6.25 전쟁영웅 2018.08.03 10:44

지금으로부터 68년 전 여름, 안동에서는 북한군의 남진을 막기 위해 치열한 접전이 벌어졌는데요,  안동지구 전투의 영웅, 허봉익 육군 대위가 8월의 6.25전쟁영웅으로 선정되었습니다.



안동지구 전투는 6.25전쟁 초기,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 방어선으로 철수하기 직전에 국군 제8사단과 수도사단 1연대가 안동지역에서 북한군 제12사단과 제8사단 소속 일부 병력의 침공을 4일 동안 저지한 방어전투였습니다.


1950년 7월 31일 새벽, 북한군 제12사단은 전차를 선두로 대대적인 공격을 감행하였습니다.

이 무렵 육군본부는 낙동강 방어선을 형성 계획에 따라 7월 31일 24시를 기해 안동에서 철수할 것을 결정하고, 명령을 하달하였습니다.


▲ 1950년 7월 말, 안동에서 지도를 살피는 장교들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이에 따라 국군 제8사단은 낙동강 전선으로 철수 작전을 진행하였습니다.

그러나 북한군 1개 연대와 접전을 벌이고 있던 제16연대는 철수명령을 뒤늦게 받았고, 북한군에게 포위당하여 각개로 철수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장교 21명, 병사 814명이 전사하고 실종되는 피해를 입었습니다.


▲ 1950년 8월, 안동에서 떠나는 피난민들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이때 제3대대 3중대장 허봉익 대위는 2개 소대 병력을 인솔하여 북한군 2개 대대 병력과 *백병전을 벌였습니다. 그가 지휘하는 제3중대는 북한군 1개 중대를 격멸하고 포위망 돌파를 위해 고군분투했지만, 이 과정에서 적의 포격과 수적 열세로 허봉익 대위는 전사하고 말았습니다.


*백병전 : 적과 근접해 있어 사격이 이루어지지 않으므로 육박하여 칼․창․총검 등으로 싸우는 전투.

‘육박전’이라고도 함. 


▲ 1950년 안동 근교에 이루어진 미 공군의 폭격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1950년 8월 2일 안동지구전투에서 전사한 허봉익 대위. 장렬하게 산화한 그의 유해는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되었고 정부는 그의 공적을 기려 1954년, 태극무공훈장을 추서하였습니다.


▲ 태극무공훈장 (출처: 대한민국 상훈)


임전무퇴의 정신으로 대한민국을 수호했던 허봉익 대위. 8월의 6.25전쟁영웅, 허봉익 육군 대위를 기억해주세요!

출처: http://mpva.tistory.com/5262?category=282590 [국가보훈처 대표 블로그 - 훈터]

posted by 이영서_전산부장 kor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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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영웅 2018.07.13 08:07

6.25전쟁 당시 강원도 영월 지역을 지키기 위해 목숨 바친 김해수 경찰 경감과 석상익 경찰 경위가 7월의 6.25전쟁영웅으로 선정되었습니다!



6.25전쟁 개전 초기에는 전쟁에서 우위를 점한 북한군의 공세가 강하게 이루어졌고 1950년 7월 1일, 상당수의 강원도 경찰은 남하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강원도 영월은 10만kw 규모의 화력발전소가 있는 요충지였습니다. 때문에 강원도비상경비사령부는 조국을 수호하기 위한 결단을 내리고 전경 제8대대를 포함한 영월 방어부대를 편성합니다.


▲ 1956년 영월발전소 (출처: 국가기록원)


7월 2일을 시작으로 영월에서는 수차례의 공방전이 이루어집니다. 영월지구 전투부대는 일시적으로 영월을 점유하는데 성공하지만 북한군의 공세로 결국에는 후퇴하게 됩니다.


▲ 1950년 7월, 전경대의 모습 (출처: 국가기록원)


하지만 강원도 전투경찰은 물러나지 않았습니다. 7월 7일, 상동지역 전경 제8대대 제1중대장 김해수 경감이 이끄는 47명의 결사대가 구성되고 재공격을 준비합니다.


7월 8일 오후 2시경 녹전리의 송현고개를 넘어선 김해수 경감과 결사대는 북한군과 마주치게 됩니다. 결사대는 선제공격을 가하고 백병전을 불사하는 투혼을 발휘하여 싸웠습니다.


▲ 전투가 일어났던 영월군 녹전리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그러나 결사대는 대병력을 앞세운 북한군에 포위당하고 맙니다. 적의 거센 공격 속에서 김해수 경감은 박격포탄에 맞아 전사하고, 그를 대신하여 석상익 경위가 결사대를 지휘하여 항전합니다. 하지만 석상익 경위마저 전사하게 되고 전투는 24명 전사, 7명 부상, 적 73명이 사살되며 끝이 납니다.


김해수 경감, 석상익 경위가 이끈 결사대는 영월을 회복하는 데는 실패하였습니다. 그러나 강원도 전투경찰의 녹전리에서의 용맹한 전투는 적의 진격을 지연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필사의 전투가 벌어졌던 영월 녹전리. 현재 이곳에는 ‘호국경찰전적비’가 강원도 전투경찰들의 기개만큼이나 위풍당당하게 서있습니다. 또한 6.25전쟁에 참전한 강원도 전투경찰들의 공헌을 기리기 위해서 매년 이곳에서 녹전리 전투의 추념행사가 거행되고 있습니다.


▲ 호국경찰전적비 (출처: 현충시설정보서비스)

▲ 녹전전투 추념제전 (출처: 강원지방경찰청)


68년 전 7월은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웠습니다. 

영월을 사수하기 위해 결사적으로 항전한 김해수 경감·석상익 경위, 그리고 강원도의 전투경찰.

나라를 위해 목숨 바쳐 헌신한 그들을 기억해주세요.



출처: http://mpva.tistory.com/category/궁금-터[호국보훈이야기]/이달의 6·25전쟁영웅 [국가보훈처 대표 블로그 - 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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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영웅 2018.06.04 12:58

1950년 6월 25일, 6.25전쟁 발발 당일 북한군이 춘천 지역을 공격하자 임부택 연대장이 지휘하는 제6사단 7연대는 효과적으로 화력을 운용하여 이를 격퇴하였습니다.



이어, 7월 충북 음성 동락리 전투에서는 북한군 15사단 48연대를 기습 공격하여 개전 이래 통쾌한 첫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이 전투의 승리로 부대원 전원은 1계급 특진의 영예를 부여받았고, 국군은 진천-음성을 잇는 방어선을 형성할 수 있었습니다.

1951년 4월, 용문산에서는 중공군 3개 사단의 공격에도 반격하여 6.25전쟁 사상 최대의 전승을 기록했습니다.

또한, 1953년 7월 11사단장 재임 시에는 휴전 전투라고 일컫는 삼현지구 반격 작전에서 중공군 4개 사단의 공세를 저지하여 현재의 휴전선을 확보하는 데 크게 공헌하였습니다.

임부택 소장은 적의 지휘관이 그를 사로잡으라는 특별 지시를 내릴 정도로 전쟁 기간 내내 탁월한 지휘력과 용맹성을 발휘해 두 차례의 태극무공훈장을 받았습니다.

임부택 소장은 6.25전쟁 기간 내내 최전방으로 나가 목숨을 아끼지 않고 전투에 임하며 대한민국을 수호하였습니다.

기억하고 감사하고 추모하는 호국보훈의 달, 6월의 6.25전쟁영웅인 임부택 육군 소장을 함께 기억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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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영서_전산부장 kor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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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영웅 2018.05.08 14:32

김현숙 대령은 191574일 평양에서 태어나 일본 동경체육전문학교를 졸업하고 평양 강동여중 체육교사로 근무했습니다.

 

1949년 예비역 육군 소위로 임관한 김현숙 대령은 이듬해 6.25전쟁이 발발하자 수많은 어린 남학생들이 군에 입대하는 모습을 보고 여자라고 해서 가만히 있을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이어 김 대령은 이승만 대통령에게 여자의용군 모집을 건의했습니다.

 

남녀를 막론하고 이 시국을 재인식하여 국가총력으로 최후의 평화를 획득할 때까지 싸워야 할 것이다.


- 김현숙 대령이 발표한 여자의용군 모집 담화문 중에서

 

 

19508, 여자의용군 모집에 대한 담화를 직접 발표한 김현숙 대령은 육군 제2훈련소 예속으로 여자의용군교육대를 창설하고 초대 교육대장으로 취임하였습니다.

김 대령은 여자의용군을 몸소 가르치며 여자배속장교 출신들을 규합하고 지휘관, 참모 등의 임무를 부여하여 여자의용군 1, 2874명을 양성해냅니다.

 

여자의용군 교육대 발족 (출처 : 전쟁기념관)

 

여자의용군 훈련 (출처 : 국가기록원)

 

이들은 6.25전쟁 동안 국군의 일원이 되어 정보 및 첩보수집, 선무활동, 모병업무 등 국가를 구한다는 신념으로 전방위 활약을 펼쳤습니다.

 

김현숙 대령은 19533, 여군 최초로 대령으로 진급하였습니다. 같은 해 9월에는 최초의 여군기를, 19548월에는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공로훈장을 받았습니다.

김 대령은 19609, 초대 여군처장으로 전역하였습니다.

 

미국 육군공로훈장 (출처 : 국가기록원)

조국이 위태로울 때 기꺼이 응답한 자랑스러운 군인, 김현숙 대령! 대한민국 여군 창설과 발전의 주역이었던 5월의 6.25전쟁영웅, 김현숙 육군 대령을 기억해 주세요.

 




출처: http://mpva.tistory.com/category/궁금-터[호국보훈이야기]/이달의 6·25전쟁영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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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영웅 2018.04.04 10:23
4월의 6.25전쟁영웅은 타흐신 야즈즈 터키 육군 준장입니다




야즈즈 준장은 터키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했으며 제1차 세계대전 및 터키 독립전쟁에서 활약한 경험 많은 베테랑 군인이었습니다. 6.25전쟁에 참전하게 된 야즈즈 준장과 터키여단은 1950년 10월 17일, 부산항에 도착했습니다.  


▲ 터키군의 모습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터키여단은 군우리 전투, 평양철수작전, 장승천 전투, 사기막 전투, 네바다 전초전 등 수차례의 공방전을 전개했습니다. 야즈즈 준장과 터키여단은 여러 전투에서 활약하며 ‘용감한 터키군’의 진면목을 보여주었습니다.


썬더볼트작전에서 유엔군에 기여하다


특히, 준장이 이끄는 터키여단은 유엔군의 대규모 위력 수색작전인 썬더볼트작전에서 유엔군의 값진 승리에 기여했습니다. 용인 김량장리·151 고지 전투에서 준장이 이끄는 터키 여단은 총검을 들고 용감한 백병전으로 적을 몰아냈습니다.

터키여단은 이 공로를 인정받아 대한민국, 미국 정부로부터 부대표창을 받습니다.


▲ 야즈즈 준장 (출처: 국방부 블로그)


▲ 당당하게 깃발을 세운 터키군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지리적 요충지 수리산 전투의 고지를 점령하다


며칠 후 준장과 터키여단은 지리적 요충지인 수리산에서 전투에 나서 또다시 썬더볼트작전에 기여합니다. 터키여단은 최종 목표였던 수리산 440고지를 4차례에 걸쳐 공격하여 확보합니다. 이 승리로 유엔군은 한강선 진출을 위한 교두보를 얻게 됩니다.


▲ 타흐신 야즈즈 준장


전쟁사에 길이 남을 멋진 공훈을 세운 야즈즈 준장과 터키여단.

낯선 대한민국 땅을 용감하게 수호해낸 그들의 피와 땀에 감사의 마음을 느끼는 4월을 만들어 보시는 건 어떨까요?


 



출처: http://mpva.tistory.com/5046?category=282590 [국가보훈처 대표 블로그 - 훈터]

posted by 이영서_전산부장 kor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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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영웅 2018.03.14 15:37

충무공의 뜻을 이은 후예여! 조국의 바다를 수호하라


안녕하세요, 훈터 독자 여러분! 6.25전쟁 당시 대한민국의 바다를 지키기 위해 힘쓴 현시학 해군 소장이 3월의 6.25전쟁영웅으로 선정되었습니다. 


▲ 현시학 해군 소장


PC-703함(삼각산), 서해안을 지키다


현시학 해군 소장은 6.25전쟁 당시 PC-703함(삼각산) 부장 직책을 수행하던 중, 1950년 7월 서해안봉쇄작전에 참전하여 옹진방면으로부터 남하중인 적 수송선단 12척을 PC-702함(금강산)과 협동하여 격퇴하였습니다. 


1950년 8월에는 고성으로부터 통영으로 진출하려는 적을 맞아 정교한 함포사격을 가하여 적 공격을 차단함과 동시에 통영을 수복하기 위한 아군 해병대의 통영상륙작전 전승에 크게 기여하였습니다.


▲ 통영상륙작전 전투지 앞바다 (출처: 독립기념관)


PC-704함(지리산), 피난민을 구출하다


PC-704함(지리산) 함장 임무 중에는 1951년 1월에 황해도 월사리에서 피난민 5,000여명을 구출하여 백령도로 이송하였으며, 황해도 지구에 대한 아군 유격대 작전과 피난민 구출 작전을 위해 함포사격 및 구호품을 지원함으로써 북한군의 해안 및 도서 진출과 중공군의 남침을 저지하는데 크게 기여하였습니다. 


▲ PC-704함(지리산). (출처: 대한민국 해군 블로그)


이와 같이 현시학 소장은 6.25전쟁기간 동안 지상 작전 지원과 피난민 철수에 지대한 공을 세운 것을 인정받아 을지무공훈장(‘52)을 수여받았으며, 전쟁이 끝난 후에는 제1전단 사령관, 함대사령관, 해군사관학교 교장 등을 역임하였습니다. 


▲ 을지무공훈장 (출처: 대한민국 상훈)


대한민국 바다에서 함께한 형제


또한, 현시학 소장은 흥남철수작전에서 98,000여명의 피난민 구출에 크게 기여하여 ‘한국판 쉰들러’로 불리는 현봉학 박사의 친동생이기도 합니다. 


▲ 흥남철수작전 당시 탈출 중인 피난민들 (출처: 전쟁기념관 블로그)


 현봉학 박사 (출처: 전쟁기념관 블로그)


6.25전쟁 당시 ‘서해안봉쇄작전’과 통영상륙작전에서 활약한 3월의 6.25전쟁영웅, 현시학 해군 소장을 함께 기억해 주세요!

출처: http://mpva.tistory.com/4990?category=282590 [국가보훈처 대표 블로그 - 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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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영웅 2018.02.28 15:52



안녕하세요, 훈터 독자 여러분. 오늘 소개해드릴 분은 2월의 전쟁영웅, 마리누스 덴 오우덴 육군 중령입니다.

오우덴 중령은 6.25전쟁 당시 유엔군 네덜란드 대대의 지휘관으로 참전, 헌신적인 리더쉽을 보여주며 유엔군에 반격의 기회를 갖게 해준 분입니다.


마리누스 덴 오우덴 중령은 네덜란드 왕립 육군사관학교 졸업 후 1932년 7월 31일 네덜란드 왕립 육군 소위로 임관하여 수많은 전투를 치렀습니다. 그리고 1950년 6.25전쟁에 참전하기 위해 조직된 유엔군의 네덜란드 대대에 자원하였습니다.  


1950년 10월 21일 중령은 당시 소령으로 네덜란드 대대의 지휘관으로 임명되었고, 1950년 10월 26일 한국으로 출발하여 11월 23일 부산항에 도착했습니다. 당시 네덜란드는 1척의 구축함과 함께 총 5,322명을 파병했습니다.


▲ 6.25전쟁 당시 네덜란드 해군 구축함 (출처: 전쟁기념관 블로그)


오우덴 중령과 그의 대대는 전선의 급박한 상황으로 인하여 부산에 도착한지 1주일 만에 전선으로 파견되었습니다. 그들은 미2사단(인디언헤드 사단) 38연대에 배속되었고, 전선의 후방에서 12월 중순의 혹한을 견디며 적군을 방어하는 작전을 수행했습니다.


▲ 1950년, 미군이 부산에 첫 상륙하는 모습(왼쪽) 및 

미 해병이 상륙하는 모습(오른쪽). (출처: 국가기록원)


1951년 2월 5일, 오우덴 중령의 대대는 북한군과 중공군을 북쪽으로 밀어내기 위한 ‘라운드업 작전(Operation Round Up)’*에 참여하였습니다.


* 라운드업 작전(Operation Round Up) : 1951년 2월 5일, 서울 탈환의 여건을 조성하기 위하여 국군이 선봉을, 미군이 후속부대를 맡아 전개한 작전.


▲ 횡성 전투 당시의 모습. (출처: 국가기록원)


2월 11일, 북한군과 중공군은 대대적인 반격을 개시하였고, 홍천-횡성간 도로에서 밀고 밀리는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습니다. 


오우덴 중령의 부대는 큰 피해를 입으며 후퇴하는 국군을 엄호하였습니다. 안타깝게도 이 전투에서 오우덴 중령을 포함하여 15명이 전사하였는데요, 이들의 희생으로 유엔군은 중공군의 공세를 저지하고 반격의 기회를 갖게 됨으로써 이후 전쟁의 양상을 바꿀 수 있었습니다.


▲ 강원도 횡성에 있는 네덜란드 참전 기념비


오우덴 중령이 참전한 주요 전투는 인제 전투, 대우산 전투, 평강-별고지 전투, 횡성 전투 등이 있습니다.


▲ 2016년 5월 11일, 네덜란드 참전용사 초청 행사 당시 거행되었던 오우덴 중령 추모식


머나먼 타국,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를 목숨 바쳐 지켜낸 마리누스 덴 오우덴 육군 중령과 네덜란드 대대! 2018년 2월의 전쟁영웅 오우덴 중령을 함께 기억해 주셨으면 합니다! 



- 참고 자료

‘횡성전투’,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출처: http://mpva.tistory.com/category/궁금-터[호국보훈이야기]/이달의 6·25전쟁 호국영웅 [국가보훈처 대표 블로그 - 훈터]

posted by 이영서_전산부장 kor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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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영웅 2018.01.16 15:47


2018년 1월의 전쟁영웅으로 선정된 김신 공군 중장은 6.25전쟁 당시 공군의 최초 전투기였던 F-51을 인수하는 데 기여하고, 북한군 후방보급로의 요충지였던 승호리 철교 폭파 임무를 성공적으로 완수했던 분입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김신 공군 중장의 이야기를 전해드릴게요.


▲ 김신 공군 중장


김신 중령(당시 계급)은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자, 그 다음날인 6월 26일에 이근석 대령 등 10명과 함께 일본으로 건너갔습니다. 미군으로부터 F-51 무스탕(Mustang) 전투기를 인수하기 위해서였죠.


김신 중령은 인수에 참여한 10명 중 유일하게 미 공군에서 F-51로 훈련받은 경험을 보유하고 있어, 비행훈련 진행과 전투기 인수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F-51 인수는 대한민국 공군의 본격적인 전투 임무 수행의 결정적인 출발점이었습니다.


한강에서 열린 대한민국 공군 에어쇼에서의 F-51 전투기

(출처 : 국사편찬위원회)


단 한 번의 비행훈련 끝에 F-51 전투기를 인수해 7월 2일 귀국한 김신 중령 등은 다음날인 7월 3일부터 바로 출격하여 묵호, 삼척 지구와 영등포, 노량진 지구 등에서 적 부대와 탄약저장소를 공격했습니다.


이후에도 그는 지리산 공비토벌작전, 대한민국 공군 단독출격작전 등 전쟁기간 중 총 19회 출격하여 조국의 하늘을 사수하기 위해 힘썼습니다.


▲ 전쟁 중 피난민 (출처 : 국가기록원)


김신 공군 중장이 제10전투비행 전대장으로 재임할 당시, 승호리 철교 폭파 임무를 맡게 됩니다.


승호리 철교는 평남 중앙선이 지나는 대동강 지류인 남강에 설치된 철교로, 군수물자를 중·동부 전선으로 수송하는 적 후방보급로의 요충지였습니다. 이 철교의 폭파를 위해 이전에 미 공군이 수차례 출격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던 전적이 있었죠.


▲ 근접항공작전지원을 펼치는 우리 공군의 모습을 재현한 사진

(출처 : 대한민국 공군 블로그 '공감')


1, 2차 출격에도 임무에 실패하자, 김신 대령(당시 계급)은 휘하 지휘관 참모와 전술적 문제를 논의하여 북한군의 극심한 대공포화의 위협을 무릅쓰고 고도를 강하하여 폭탄을 투하하는 새로운 공격전술을 창안했습니다.

그리고 1952년 1월 15일, 마침내 김신 대령은 승호리 철교 폭파 임무를 성공적으로 완수하였습니다. 


정부는 김신 공군 중장의 전공을 기려 을지무공훈장을 수여했습니다.

 

▲ 폭격을 맞아 불타는 교각 (출처 : 국사편찬위원회)


포화 속에서 평화를 향해 날아올랐던 김신 공군 중장. 2018년 1월의 전쟁영웅인 그의 이름을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출처: http://mpva.tistory.com/4923?category=282590 [국가보훈처 대표 블로그 - 훈터]

 

 

posted by 이영서_전산부장 kor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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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영웅 2017.11.10 08:04

6.25전쟁 발발 당시 벨기에 상원의원이자 국방부 장관으로서 한국 파병을 강력히 주장하였고, 적지 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직접 전쟁에 참전하기도 했던 ‘앙리 모로 드 믈랑’ 벨기에 육군 소령이 ‘11월의 전쟁영웅’으로 선정되었습니다.

그는 1950년 6.25전쟁 지원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열린 국무회의에서 장비만 지원하자는 다수의 의견을 일축하고 파병을 주도했는데요. 뿐만 아니라 그는 1951년 50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통신장교로 6.25전쟁에 참전하였습니다. 당시 벨기에 법에 따르면, 상원의원은 해외 참전을 할 수 없었는데요. 앙리 모로 드 믈랑의 6.25전쟁 참전을 위해 벨기에 법률이 개정되기까지 했습니다.

국방부장관직을 내려놓고 참전을 결정한 그의 계급은 놀랍게도 소령에 불과했습니다.


▲6.25전쟁 당시 유엔참전군 통신병의 모습

(출처: 데일리안)


앙리 모로 드 믈랑 소령은 1951년 2월, 임진강 북쪽의 금굴산 진지를 방어하여 중공군의 진출을 저지하였고 이를 통해 영국 제29여단의 철수를 지원했습니다. 


▲ 영연방 제29여단(얼스터 대대) 부대원들

(출처: 육군 공식블로그 동고동락)


"벨기에도 한국처럼 열강에 둘러싸인 소국이기 때문에 같은 처지의 한국을 도와야 했다. 전쟁은 끔찍한 일이다. 하지만 인간은 전쟁 한가운데서 전우를 위해 목숨을 희생할 수 있는 위대한 창조물이다." 1988년 펴낸 회고록에서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 6.25전쟁에 참전한 벨기에 대대(출처:Gadget Story 블로그)


자신이 가진 것을 모두 내려놓은 채 더 큰 가치인 인류애를 행동으로 보여주었고, 진정한 노블레스를 실천한 그의 모습은 지금까지도 세계인의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 앙리 모로 드 믈랑 벨기에 육군 소령의 모습


아침저녁으로 쌀쌀한 나날들이 이어지고 있는 11월, 이달의 전쟁영웅인 앙리 모로 드 믈랑 소령을 떠올리며 그의 헌신을 기리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출처:[국가보훈처 대표 블로그 - 훈터]


posted by 이영서_전산부장 kor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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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영웅 2017.10.10 15:11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한 이후 국군과 유엔군, 북한군과 중공군은 치열한 혈투를 거듭했습니다. 정전 협정 체결까지 양측은 38선상에서 피의 능선 고지 전투, 단장의 능선 고지 전투, 펀치볼 전투, 고양대 전투, 백마고지 전투 등 수많은 고지 쟁탈전을 벌였습니다. 


그 중 백마고지 전투는 10일 동안 고지의 주인이 24번이나 바뀔 정도로 세계 전쟁사에서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일진일퇴의 혈전이었는데요. 10월의 전쟁영웅은 바로 이 저항과 역습의 최전방에서 백마고지 탈환을 이끌어낸 10월의 전쟁영웅, 김경진 육군 중령입니다.


당시 백마고지는 철원평야 서북단에 위치한 독립고지로서 하루 평균 5만발의 포탄이 허공을 가로질러 서로의 적진에 투하되는 곳으로, 작전상 매우 중요한 요충지였습니다. 이 당시 백마고지는 포격으로 인해 산이 본래의 모습을 잃어 그 모양이 마치 백마가 누워있는 듯한 모습을 하고 있다고 하여 “백마고지”로 불리게 될 정도로 그 전투는 치열했습니다. 


▲ 북한군을 향해 총을 겨누고 있는 국군 (출처: 군포시민신문)


1952년 10월 11일 국군 제9사단 제29연대 제2대대장인 김경진 소령(당시)은 사단장으로부터 불과 1시간 전 제1대대가 물러났던 정상을 탈환하라는 명령을 받고 역습을 감행하였습니다.


▲ 백마고지 전투에서 적진을 향해 달리는 국군

(출처: 김병장네 실시간 이슈)


그는 고지 정상의 중공군이 진지보강 작업을 시작하기도 전에 빗발치는 총탄과 포탄 파편을 뚫고 포복으로 전진하여 최전방으로 나아가 부하들을 독려하며 진두지휘했습니다.




▲ 적진을 향해 쏘는 박격포 (출처: 김병장네 실시간 이슈)


이 상황에서 김경진 중령은 ‘사병과 더불어’라는 지휘철학으로 병사들과 함께 생사의 고비를 헤쳐 나가고자 했습니다. 그는 가장 먼저 백마고지 전투에 투입되어 있던 제6중대를 제5중대의 좌측으로 진출시켰습니다. 이후 빗발치는 총탄과 포탄 파편을 뚫고 포복으로 전진하여 자신도 직접 최전방으로 나아갔습니다. 


▲ 백마고지 전투에 소비된 수 만개의 탄피 (출처: 경북일보)


정상을 20여 미터 앞둔 지점까지 진출했던 김경진 소령은 최후의 돌격사격을 감행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 적의 박격포가 근처에 떨어졌고 그 여파로 포탄의 파편이 중령을 향해 날아들었습니다. 안타깝게도 김경진 소령은 적의 박격포탄에 의해 현장에서 전사하고 말았습니다. 


▲ 격전지로 진격하는 국군의 모습 (출처: 김병장네 실시간 이슈)


김경진 소령이 전사한 이후 대대원들은 그가 생전 보여준 용맹한 솔선수범에 전투의지를 불태웠고, 과감히 돌격하여 백마고지를 탈환하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 백마고지 전적 기념관


정부는 김경진 소령에게 1계급 특진과 태극무공훈장을 추서하였습니다. 우리는 백마고지 전투의 영웅, 김경진 중령의 ‘사병과 더불어’라는 지휘철학과 부하들을 진심으로 사랑했던 마음, 그리고 숭고한 희생정신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출처: http://mpva.tistory.com/4774 [국가보훈처 대표 블로그 - 훈터]

posted by 이영서_전산부장 kor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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