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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조 임금님께서 약주 일 배를 하신다. 장소도 시장 한복판. 사람의 왕래가 무던히도 잦은 곳. 가까이에는 해우소도 있어서 드나드는 백성의 처지를 살펴보시기에 안성 맟춤인 곳.

    술상은 검소하기 이를 데가 없다. 술잔 하나 술 한 병, 나머지는 안주가 담겨 있는 접시인가 본다.

    임금의 얼굴엔 미소가 서려 있고 자작하는 듯한 모습이 평화스럽다.

    불취무귀(不醉無歸) 임금이 했다는 말이다.

    취하지 않고서는 돌아가지 않는다. 이 글을 읽으면서 술에 대한 연민의 정을 느끼는 나는 의 아스러운 생각을 했다.

    그런데 나의 이러한 불손한 생각을 일깨워 주는 다른 글 이 있으니, 그 글은 약주 드시는 임금님 옆에 세운 돌에 새겨져 있었다.

    "정조는 화성 축성 당시 기술자들을 격려하기 위한 회식 자리에서 불취무귀라고 하였다. 즉 취하지 않으면 돌아가지 못한다는 말이다. 불취무귀란 실제로 취해서 돌아가라고 한 말이 아니라 자신이 다스리는 백성 모두가 풍요로운 삶을 살면서 술 에 흠뻑 취할 수 있는 그런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 주겠 다는 의미이다. 한편 아직도 그러한 사회를 만들어 주지 못한 군왕으로 서 자책감과 미안함을 토로한 것이다."

    정조 임금은 술을 즐겼던 것 같다. 하기야 그가 살아온 과거를 보면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 이 든다.

    산 이라는 이름으로 사도세자와 혜경궁 홍씨 사이에 아 들로 태어나, 아버지의 죽음, 어머니의 외로움을 지켜보 면서 할아버지 영조와 숫한 대신들의 눈치를 보며 살았 을 것 같은 어린시절의 임금 정조. 더구나 그가 왕위에 오른 것도 아버지 사도세자의 뒤를 이은 것이 아니고, 큰아버지 되시는 효장세자(영조의 장 남, 사도세자의 형으로 먼저 타계하였음)의 뒤를 이어받 아 왕위에 올랐으니 그 또한 얼마만한 가슴의 상처이랴.

    아무쪼록 그가 꿈꾸던 풍요로워서 술에 흠뻑 취할 수 있 는 그런 세상이 오기를 기다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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