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선대원군의 뺨을 때린 장군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 이하응(李昰應·1820~1898)이 몰락한 왕족 신분으로 방탕한 생활을 하고 다닐 때의 일이었습니다. 하루는 그가 한양에서 꽤나 유명한 기방(妓房)에서 술을 마시며 온갖 추태를 부리고 있었는데 우연히 옆 자리에 앉아 있던 금군별장 이장렴(李章濂·1821~?)과 언쟁을 벌이게 되었습니다.
당시 금군별장(禁軍別將)은 지금의 청와대 경비단장에 해당하는 직책으로 당시에는 꽤나 높은 군직(軍職)이었고 이하응은 비록 왕족이라고는 하나 별 볼일 없는 시정잡배들과 어울려 술이나 마시는 건달이나 다름없었기에 이장렴은 매우 거친 말로 이하응의 체면을 깎아내렸습니다.
그러자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이하응은 분통을 터뜨리며 이장렴을 향하여 고함을 질렀습니다. “일개 미천한 군직에 있는 자가 감히 종친(宗親)에게 이처럼 무례하게 대할 수 있느냐?” 그러나 이장렴은 눈도 꿈쩍하지 않고 도리어 이하응에게 “한 나라의 종친이면 체통을 지켜야지 기방이나 드나들면서 왕실을 더럽혀서야 되겠소?”라고 호통을 치더니 그것도 모자라 이하응의 뺨을 힘껏 후려쳤습니다.
예상치 못한 이장렴의 행동에 크게 당황한 이하응은 슬그머니 자리를 피해 도망치고 말았습니다.그 후 몇 년이 지나 이하응의 둘째 아들 명복이 열두 살의 어린 나이로 왕위에 오르자 이하응은 흥선대원군에 봉해졌고 지난날 이장렴에게 겪었던 수모를 잊을 수 없었던 대원군은 자신이 살고 있던 운현궁(雲峴宮)으로 그를 불러들였습니다. 그리고 운현궁에 들어선 이장렴에게 다짜고짜 물었습니다.
“자네는 이 자리에서도 나의 뺨을 때릴 수 있겠느냐?” 과거 대원군의 뺨을 때렸던 이장렴에게는 불편한 자리가 아닐 수 없었지만 그는 당당하게 대답했습니다. “지금이라도 대원군께서 그때 그 자리에서 했던 언행을 하신다면 제 손이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것입니다.”이장렴의 대답을 들은 대원군은 범상치 않은 그의 기개에 호탕하게 웃었고 그가 물러갈 때 문 밖까지 나와 직접 배웅하여 이렇게 소리쳤습니다.
“금위대장(禁衛大將)이 나가시니 물렀거라!” 이날로 이장렴은 금위대장, 즉 지금의 수도방위사령관으로 임명되었습니다.상대방이 어떤 자리에 있든지 상관하지 않고 자신의 소신을 지켜 행동했던 이장렴과 그의 비범함을 알아차리고 고위직으로 발탁했던 흥선대원군
이들을 보면서 혹시 자리와 직책에 위축되어 상관에 대한 정당한 직언(直言)을 회피하거나 꺼렸던 경험은 없는지, 또는 후임자의 건설적인 의견에 불쾌해하거나 무시했던 적은 없는지 되돌아보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