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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쟁기념관은 일제 강점기 항일무장투쟁을 하다가 전사한 양세봉(梁世奉) 독립운동가를 2012년 8월의 호국인물로 선정, 발표했다.  
     
    양세봉 선생은 1896년 평안북도 철산 출생으로 1919년 3·1 독립운동이 일어나자 평안북도 천마산을 근거로 한 항일무장단체인 천마산대(天摩山隊)에 입대하여 일본 행정기관 파괴, 친일파 암살 등의 항일투쟁을 전개했다.  
     
    1920년 천마산대를 따라 만주로 건너가 광복군총영에 가담하여 활약하다가 1923년 육군주만참의부(陸軍駐滿參議府) 소대장과 제3중대장을 역임했다. 이후 선생은 대한통의부 중대장, 정의부 중대장, 국민부 제1중대장 등을 역임하며 일제 기관 습격, 밀정 처단 등 무장활동을 전개했으며 1929년 조선혁명군이 조직되자 부사령관을 거쳐 총사령관이 되어 항일 무장투쟁을 지휘했다. 1932년 일본군이 만주사변을 일으켜 만주를 석권하자 재만 중국군과 연합작전을 펼치기로 하고 한·중 연합군을 편성했다.  
     
    1932년 3월, 선생이 가담한 한·중 연합군은 병력을 총동원하여 공격해 오는 일본군에 맞서 싸운 끝에 일본군이 점령하고 있던 영릉가성(永陵街城)에 이어 상협하(上夾河)까지 점령하는 등 대승을 거두었다. 또한 선생은 조선혁명군 군관학교를 설립하고 교장을 맡아 5만의 군대를 훈련시키는 등 혁명군 양성에도 힘을 기울였다. 이후로도 홍경성전투, 노구대전투, 쾌대모자전투에 참여하여 연전연승을 거두던 선생은 1934년 밀정의 계략으로 일본군에 포위되자 대원들과 함께 치열한 전투 끝에 전사했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1962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2012년 8월 2일(목 14:00) 전쟁기념관 호국추모실에서는 유관단체 주요인사가 참석한 가운데 고인을 추모하는 현양행사가 거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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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보훈처는 故 연제근 육군 이등상사를 8월의 6․25전쟁영웅으로 선정하였습니다.  
     
    연제근은 1948년 1월 30일에 국군의 전신인 국방경비대에 입대해 청주의 제7사단에서 훈련을 받았습니다. 1949년 육군 3사단 22연대 1대대 1중대 대원으로 지리산 공비토벌작전에 참전해 공비 9명을 생포하는 큰 전공을 세웠으며, 이 공적으로 故 연제근 분대장은 2계급 특진의 영광을 안게 되었습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북한군은 3일 만에 서울을 함락하고 3개월도 안 돼 낙동강 방어선마저 무너뜨리고 포항 일부와 부산을 두고 국군과 대치하였습니다.  
     
    이렇게 전선이 포항 형산강 일대까지 밀리는 백척간두의 위기에 처했을 때, 1950년 9월 17일 제3사단 22연대 1대대의 분대장 연제근은 12명의 돌격대원을 이끌고 포항을 탈환하기 위한 형산강 도하작전에 참가하였습니다.  
     
     
     
    이때 연제근은 수류탄을 몸에 매달고 수중포복으로 돌진하던 중 적의 기관총 사격으로 어깨가 관통당하는 중상을 입었지만 끝까지 도하하여 3발의 수류탄을 투척하여 적의 기관총 진지를 완전히 파괴시켰습니다.  
     
    이로써 포항탈환의 결정적 공훈을 세웠지만 연제근 분대장을 포함한 9명의 특공대원이 안타깝게도 적탄에 맞아 장렬히 전사하고 말았습니다.  
     
     
     
    연제근 분대장의 전공에 힘입어 22연대는 형산강을 무사히 건너 포항지구를 수복하는데 성공했으며 이 작전은 이후 인천상륙작전과 함께 국군이 서울을 수복하고 압록강까지 북진하는 계기가 됩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전공을 기려 2계급 특진과 함께 을지무공훈장(1950년 12월), 화랑무공훈장(1951년 8월), 무공포장(1956년 10월)을 추서하였으며 시신은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되었습니다.  
     
     
     
    경북 포항시도 6·25 승전 60주년을 맞아 해도근린공원에 연제근 상사 조각상을 건립하는 등 호국영웅으로 추앙하고 있으며, 육군본부는 1995년부터 20년 이상 근속한 부사관을 대상으로 수여해 온 호국헌신상의 명칭을 2011년부터 제근상으로 변경해 연제근 분대장을 기리고 있습니다. 고향인 충북 증평군에서는 연제근상사공원을 조성하여 추모할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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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T @bluehousekorea: 아프간의 '콩 박사' 권순영씨를 아시나요? 권순영씨는 오랜 내전으로 고통받고 있는 아프간 주민들에게 콩 경작을 통한 영양 개선 봉사활동을 10년째 실천하고 있답니다. 영상으로 한번 만나 보시죠~ http://youtu.be/WD2YTT0sQ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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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급할때 응급실 이용 안내★
    새벽에 응급실에 갔는데 돈이 없을땐 이렇게 하세요!
    사고나 응급질환으로 급히 병원 응급실에 갔는데수중에 돈이 없으면 어떻게 할가요?
    "응급의료비 대불제도"를 이용하면 해결된다.
    이는 촌각을 다투는 응급환자가 당장 돈이 없어서 진료를 받지 못하는 일을 막기 위해 국가가 응급의료비를대신 내 주고 나중에 환자가 국가에 상환하는 제도이다. (국가가 먼저내준 병원비는 12개월 분할 상환하면됨)대불제도는 전 국민이 누구나 법률이 정한 응급상황에 있으면 동내병원 응급실부터 대학병원급 의료기관까지이용할 수 있다.
    신청 방법도 간단하다.
    응급실 창구 직원에게 환자의 신분을 알려주고 "응급 의료비 대불제도를 이용하겠다"고 말하고병원에 준비된 응급진료비 미납 확인서를 작성하면 된다.
    만약 병원이 거부할 경우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의료급여 관리부(02-705-6119)나 건강세상네트워크(02-2269-1901~5)로 연락해 도움을
    청하면 담당자가 병원에 진료를 받아 들이도록 조치해준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김은묵 상근객원 연구위원은 "국가가 대납한 진료비 청구서는 퇴원 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환자 본인의 주소지로 보낸다며" "본이이 지급 능력이 없으면 배우자, 부모, 자녀등 상환 의무자에게 청구서를 발송한다"고 말했다.
    진료비는 최장 12개월로 분활 납부할 수 있다.
    환자 또는 대납 의무자가 비용을 상환하지 않으면심평원이 재산 상황등을 파악해 상환소송을 제기한다.

    ★누구나 동내병원 응급실부터 대학병원 급 까지 가능★
    심평원은 지난해 총 6422건 의 대불 신청을 받아
    24억 4천만원을 지급 했다.
    하지만 국민의인지도는 낮다 중앙응급 의료센터의 지난해 조사결과가 이 제도를 아는사람은 9.8%로
    10명 중 1명에도 못 미쳤다.
    보건복지부 허영주 응급의료과장은 "환자의 대불 신청을받은 의료기관이 심평원에 제출해야 하는 서류가 많고,
    심사절차가 까다로워 일부 병원이 이 제도를 꺼리는면이있다."며 앞으로 심사청구 절차를 간소화 하고 대불지원 예산을 늘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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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흥에 놀러갔다 말벌에 쏘였는데 ....
    엄청 가렵네요
    쏘인 부위가 애매하게도 배꼽근처라 보여줄수도 없고 병원안갔더니
    가려워 미치겠네요
    좀 좋은 방법 없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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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려워 미치겠네요
    좀 좋은 방법 없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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